B컷은 선택되지 못한 사진을 일컫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사진들은 대개 수많은 사진 가운데 선택된 것들입니다. 어떤 사건을 잘 보여주거나, 상황을 설명하거나, 혹은 사진 자체로 아름답거나 인상적인 것들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찍힌 사진 가운데 그렇게 선택되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진은 선택되지 못한 채 필름북에 남거나, 사진 아카이브의 수많은 사진들 가운데 하나로 보관됩니다.
그렇다고 B컷이 쓸모없는 사진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쓰인 것은 A컷이라고 부르지만, B컷은 앞으로 언제든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나중에 전혀 다른 사람의 선택으로 중요한 사진이 될 수도 있고, A컷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사건의 앞뒤 상황이나 장소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카이브에서는 A컷의 정보적 가치를 뒷받침하고, 언젠가 다시 쓰일 가능성을 위해 B컷도 함께 보관합니다.
하지만 아카이브에 들어간다고 해서 모든 사진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보이고, 책이나 전시에서 다시 선택되고, 어떤 사건을 대표하는 사진이 되는 것은 대개 또다시 A컷입니다. B컷은 그 옆에서 맥락을 받쳐주거나, 언젠가 누가 찾아볼지 모르는 가능성의 사진으로만 오래 남아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B컷에는 B컷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어쩌면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미스터리한 매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B컷 사진의 매력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그 사진을 찍은 사람입니다. 사진을 찍던 순간의 느낌이나 생각, 주변 환경과 분위기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기억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자체만 보면 별다른 이야기가 없어 보이지만, 사진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떠올리게 해주는 사진도 있습니다.
사진에는 프레임이 있습니다. 사진에 찍힌 것은 그때 그 장소에서 벌어지고 있던 전체 모습 가운데 아주 작은 일부입니다. 게다가 어디에 렌즈를 대고 어떤 순간을 찍을 것인지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의 생각도 들어갑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남아 있는 사진을 통해 그때를 다시 보게 됩니다. 특히 선택된 A컷을 중심으로 사건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것은 A컷 사진이 가진 힘입니다. 그리고 B컷에는 그 주변과 틈새에 있던 장면들이 남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장면들이 사진만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B컷에는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B컷살롱’에서는 내가 찍은 사진 가운데 그동안 세상의 빛을 거의 보지 못했던 사진들을 하나씩 꺼내보려고 합니다. 사진에 찍힌 것뿐 아니라 그 사진을 찍던 순간의 기억, 사진 밖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일, 그때 내가 보고 느꼈던 것들, 그 장면과 관련된 옛날의 추억을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대부분 아주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가 반드시 가벼운 것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진의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역사와 만날 수도 있고, 문화나 경제, 사람과 장소의 이야기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로 꺼내보고 싶은 것은 거리에서 찍은 흑백사진 한 장입니다.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뒤 학생들이 최루탄을 피해 뒤로 물러나고, 잠시 텅 비어버린 거리입니다. 거리에는 깨진 화염병 조각과 아직 꺼지지 않은 불빛이 남아 있습니다. 이 사진을 찍기 전에는 거리가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고, 잠시 뒤에는 물러났던 학생들이 다시 거리를 메웠습니다.
이 사진은 앞뒤에서 찍힌 시위 사진들과 함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카이브에 남는 것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또 다른 일입니다. 수많은 사진이 보관되어 있어도, 그중 대부분은 좀처럼 다시 불려 나오지 않습니다.
‘B컷살롱’에서는 주로 그런 사진들을 골라보려고 합니다.
사진을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고, 기억의 끈을 조금 더 당겨본 다음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빠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