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뭔가가 계속 생깁니다.
일하면서 만든 것들이 있고, 공부하면서 읽고 쓴 것들이 있고, 재미있게 놀다가 생긴 것들도 있습니다.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파일을 만들고, 메시지를 주고받고, 운동을 하면 숫자가 쌓입니다.
하나하나는 별것 아닙니다.
그런데 오래 모아놓고 보면 그 사람이 무엇에 관심을 가졌고, 무슨 일을 했고, 무엇을 좋아했고,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왔는지가 조금씩 보입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 사람이 남긴 것들이 꽤 많은 이야기를 해줍니다.
아마 AI도 비슷할 겁니다.
아무리 똑똑한 AI라도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면 나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무엇을 공부했고, 어떤 일을 해왔고, 무엇에 관심이 있고, 지난번에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지 못하면 매번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다시 설명해야 합니다. AI가 나를 조금 더 잘 이해하려면 결국 나에 관한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데이터를 만들어왔을까.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찾아보면 여기저기 엄청나게 흩어져 있습니다.
컴퓨터 안에는 수십 년 동안 일을 하며 만든 프로젝트 파일이 있습니다. 논문과 발표문, 토론문과 칼럼도 있고, 공부하면서 읽고 발췌해놓은 자료들도 있습니다. 휴대전화와 앱에는 운동 기록이 쌓여 있고, 은행과 카드사에는 금융생활의 흔적이 있습니다. 건강과 관련된 데이터도 여러 곳에 남아 있습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것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ChatGPT와 나눈 대화입니다.
2026년부터 나는 ChatGPT와 꽤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연구와 기록, 사진과 경제, 여행과 운동 이야기를 했고, 별것 아닌 생활 이야기도 했습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생각을 설명하고, 서로 의견이 다르면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궁금해도 그냥 지나쳤을 것들을 붙잡고 오래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 대화 속에는 결과만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궁금해했고 어떻게 생각이 바뀌었는지도 남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많은 대화가 대화방 속에 그냥 쌓여만 있습니다. 찾아보면 컴퓨터 안의 프로젝트 파일도 그렇고, 공부하면서 만든 자료도 그렇고, 스마트폰 속의 데이터도 비슷합니다.
쌓이기는 엄청나게 쌓이는데, 나중에 다시 찾고 연결해서 써먹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번 모아보려고 합니다. ‘& 시시콜콜’의 데이터 아카이브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해보려는 일은 단순히 나에 관한 모든 것을 데이터로 모아두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데이터 아카이브는 ‘& 시시콜콜’에서 가장 미래적인 실험을 하는 방입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아카이브가 주로 사람이 필요한 기록을 찾아보고 읽고 이용하는 공간이었다면, AI가 일상의 도구가 된 지금은 아카이브의 이용자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기록의 맥락과 이야기를 읽고, AI는 구조화된 데이터와 메타데이터를 바탕으로 필요한 기록을 찾고 연결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만들어보고 싶은 것은 사람과 AI가 함께 참조하고,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데이터 아카이브입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만든 일과 공부의 기록, 사진과 글, ChatGPT와의 대화, 운동과 일상의 데이터를 하나씩 정리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위해 필요한 아카이브이면서, AI가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나와 오래 협업하기 위해 기반을 만드는 일입니다.
아직은 나를 위한 실험입니다. 다만 이 과정을 계속하다 보면 개인이 AI와 오래 협업하기 위해 어떤 기록 환경이 필요한지 조금씩 알게 될 것 같습니다.
거창하게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모으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내가 살아오면서 만든 기록들 가운데 지금 손에 잡히는 것부터 하나씩 정리해보려 합니다.
첫 번째는 AI와 나눈 대화입니다.
긴 대화를 주제를 중심으로 적당한 기록 단위로 나누고, 언제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했는지 간단한 정보를 붙여볼 생각입니다. 그렇게 해두면 수많은 대화 속에서 예전에 했던 생각을 다시 찾고, 서로 다른 시기에 했던 이야기를 연결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두 번째는 일하면서 만들어온 기록입니다.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기획서와 보고서, 발표자료와 사진, 디자인 파일, 메모 같은 것들이 생겼습니다. 결과물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다면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생긴 기록들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세 번째는 공부하면서 쌓인 기록입니다.
읽었던 책과 논문에서 발췌해놓은 자료, 석사와 박사학위 논문, 학술논문, 발표문과 토론문 등이 있습니다. 지금은 폴더와 컴퓨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지만, 잘 정리하면 과거에 했던 공부를 다시 꺼내 쓰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일상의 데이터입니다.
나이키 앱과 삼성헬스에 쌓이는 운동 데이터가 이미 그중 하나입니다. 앞으로 가능하고 필요하다면 금융생활이나 다른 일상 데이터도 조금씩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데이터 아카이브를 만들기도 전에 지쳐서 도망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해보려고 합니다.
제일 먼저 ChatGPT 대화 몇 개를 잘라보고, 기록 하나의 단위를 어떻게 잡을지 정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날짜와 주제 같은 기본 정보도 붙여보고, 실제로 다시 찾아보기도 하고요. 괜찮으면 조금 더 늘리고, 별로면 다시 고민해 볼 생각입니다.
작게 만들어보고, 실제로 써보고, 계속 고치는 방식입니다.
그렇게 쌓인 데이터는 꼭 데이터베이스 안에 얌전히 들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예전에 쓴 짧은 기사나 비평문, 칼럼과 토론문 가운데 지금 다시 읽어도 재미있는 것이 있다면 거의 손대지 않고 그대로 꺼내 ‘야간 ㅅㅅㅋㅋ’에 실을 예정입니다. 긴 발표문이라면 짧게 요약하고 원문 자료를 함께 첨부하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몇 년 전의 기록과 지금의 기록을 연결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기록을 모으는 것이 끝이 아니라, 모아놓은 기록이 다시 다음 이야기가 되는 셈입니다.
물론 모든 것을 공개할 생각은 없습니다. 데이터 아카이브에는 아주 개인적인 내용도 많이 들어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개해도 되는 것은 일부일 것이고, 나머지는 비공개로 남겨두거나 그중 필요한 부분만 새로운 글과 이야기로 만들어 공개하게 될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 모을지, 무엇을 공개할지, 어떤 방식으로 연결할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데이터 아카이브가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데이터베이스가 될지, 여러 작은 아카이브가 연결된 모습이 될지, 나중에 퍼스널 AI가 나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자료가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일단 해보려고 합니다.
ChatGPT와 함께 장님이 코끼리 더듬듯 하나씩 만져볼 생각입니다. 대화 몇 개를 정리해보고, 오래된 프로젝트 하나를 꺼내보고, 운동 데이터도 한번 묶어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틈틈이 만지고, 정리하고, 연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게 어떤 모양인지 조금씩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뭐라도 나오겠지요.
이렇게 뭐가 나오는지 지켜보는 일도 꽤나 시시콜콜한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빠밤.
